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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by Eric87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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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있었거나 우연히 갖게 된 재능은 분명 다른 이들에게 어떤 가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신의 노력의 결과는 아니다. 자신의 특별한 재능이 아주 흔한지 아주 희귀한지에 대해 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좋은 성품이나 멋진 목소리, 아름다운 용모나 훌륭한 손재주, 뛰어난 위트, 매력적인 성격 등은 대체로 그 소유자의 노력과 무관하다. 그가 가진 기회나 경험이 그가 자초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이 모든 경우에 개인이 가진 능력이나 서비스의 가치는,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의 정도는 도덕적 능력이나 자격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부유한 출신 젊은이들이 과도하게 감정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해답은 능력주의적 사명에서 찾을 수 있다. '뭘 해내라', '뭘 이뤄라', '뭘 성공해라' 하며 끊임없이 떨어지는 사명. 능력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승리자다. 그러나 상처 입은 승리자다. 

소비자주의적 민주주의 개념에 따르면 우리가 활기찬 공동의 삶을 영위하든, 우리와 같은 사람끼리만 모여 각자의 소굴에서 사적인 삶을 살든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공동선이 오직 우리 동료 시민들이 우리 정치공동체에는 어떤 목적과 수단이 필요한지 숙려하는 데서 비롯된다면, 민주주의는 공동의 삶의 성격에 무관심해질 수 없다. 그것은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서 온 시민들이 서로 공동의 공간과 공공장소에서 만날 것을 요구한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시장이 각자의 재능에 따라 뭐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는 능력주의적 신념은, 연대를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든다. 대체 왜 성공한 사람들이 보다 덜 성공한 사회구성원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이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 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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